산업혁명의 가장 서늘한 정의

AI 뒤의 계급 변혁: 이끌거나, 올라타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산업혁명의 가장 서늘한 정의

안녕하세요, 김성중입니다.

개점휴업 상태였던 블로그 Silkroad Camel을 저의 새 출발과 함께 'The Future Mundane'으로 바꿨습니다. The future mundane의 의미는 소개 페이지에 적어두었습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


지나친 낙관과 지나친 비관 사이

요즘 산업혁명으로 난리다. 아니 어쩌면 10년째 난리였는지도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은지 거의 정확히 10년쯤 된 듯 하다.

과거의 어느 순간을 정의하는 단어였던 산업혁명은 어느새 미래를 이끄는 내러티브의 표어로 자리잡았다. 지난 10년간, 역사에서 일상으로 꺼내진 산업혁명은 전 인류에게 앞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의 벡터값을 제시했다. 이전의 산업혁명은 모두 후대에 정의된 것임에도 말이다.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반박 불가 필살기 뒤에 숨은 선동가들은 과도하게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와 과도하게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동시에 제시한다. 'AI는 모든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라는 주장과 '일은 AI가 할 것이니 인간은 뭐하고 놀지 고민이나 해라'라는 주장 사이에서 선 보통의 인간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혼란을 마주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나도 이 질문을 어언 10년째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특히 이 질문이 더욱 뇌리 깊이 박혀 있는 이유는 대학시절 서양사 전공 수업에서 배웠던 한 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산업혁명의 가장 서늘한 정의

모두가 산업혁명을 기술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산업혁명을 정의하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는 계급의 분화다. 1차 산업혁명에서 방적 공장주(브루주아지)와 공장노동자(프롤레타리아트)가 갈라졌던 것처럼. 2차 산업혁명에서 카네기, 포드, J.P 모건과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갈라졌던 것 처럼. 3차 산업혁명에서 구글과 내가 갈라졌던 것처럼.

이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과 같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계급 간 착취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주로 강조했던 내용이지만, 신고전경제학파나 슘페터와 같은 성장과 혁신을 이야기 하는 진영에서도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소유의 크기가 갈라졌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배계급의 소유가 얼마나 정당하느냐'에 대한 견해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계급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언가 서늘하다. 그것은 계급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근처에 있기 때문 아닐까.

어찌됐든 중요한 사실은 1) 지금이 진짜로 산업혁명 시기라면, 2) 그리고 산업혁명의 패턴이 과거와 유사하다면, 이 시대를 지나치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앞으로 각자의 계급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야말로 인생 역전의 기회이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일대의 위기일 것이다. 휘황찬란한 기술 발전 뒤에는 이를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뼈저린 차이가 그려져왔다.

4차 산업혁명 회의론자의 변절

나는 '4차 산업혁명'이 정말 싫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건 선동에 불과하다는 역사학도의 삐딱한 시선에, 2018년 블록체인 업계와 2021년 VC 버블이 불을 지폈는지도 모르겠다. 산업혁명이라는 가짜 깃발 아래에 형성된 사이비 종교가 너무 많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누구보다 산업혁명을 많이 말하고 다닌다. 적어도 지금 우리가 지나치는 것이 산업혁명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고 싶어졌다. 기술이 아니라 생산구조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3단계

산업혁명은 크게 구분하면 세 가지 단계를 거쳐서 완성된다.

'생산 수단'은 간단하게 말하면 일할 때 쓰는 도구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술적 혁신이 바꾸는 것은 이 영역이다. 1차 산업혁명기에는 증기기관과 방적기 기계 및 공장이었고, 2차에는 조립라인, 대규모 생산설비, 철강/화학 장비였고, 3차에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네트워크였다.

그런데 기깔난 생산수단이 등장했다고 산업혁명이 자동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생산수단이 실제로 생산력 증대로 이어짐이 증명되면, 특정 이해관계와 버무려져 생산 구조 자체가 변경된다. 생산구조의 변경이란 아래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한다.

기업 구조 : 기업의 법적/행정적 구조, 조직구조 등
노동 방식 : 노동자의 일하는 방식 및 팀의 협업 방식 등
기업가 상 : 전문 경영인, 기술 엘리트 등
자본 구조 : 자본 조달 및 집행 방식, 투자 대상 등

매 시기 등장한 새로운 생산구조는 뉴 브루주아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위한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 1차 산업혁명 때는 공장 시스템이 발명되었고, 올리버 트위스트는 어린 나이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저임금 착취를 당했다. 2차에는 Fordism으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체제와 컨베이어벨트가 발명되었고, 블루칼라 찰리채플린은 무한대의 시간동안 너트를 조였다.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기 위한 현대적 의미의 주식회사 개념이 보편화되었고, 전문경영인과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등장했다. JP 모건과 록펠러는 투자은행과 트러스트 형태로 대형 자본이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

3차에는 실리콘밸리 부르주아가 등장하여,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을 소유하며 주도권을 잡았다. 노동과 사용의 경계는 흐려지면서 구글의 사용자는 돈을 지불하면서 구글의 알고리즘에 기여하고 있다. VC는 창업자와 미래가치를 중심으로 한 기업가치 평가론을 개발하여 빅테크 기업에 초기 투자하면서 새로운 자본가 계층으로 등장했고, 코드를 읽고 쓸 줄 아는 프로그래머들의 몸값은 2차의 조연이었던 화이트칼라 사무직을 제쳤다.

AI는 생산 수단을 넘어 구조를 변화시키는가?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제시된 기술들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명시적으로 생산구조를 변화시킨 기술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들인 블록체인/크립토조차 떼부자를 다수 만들기는 했지만 생산 구조를 변경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 AI 흐름 위에서는 생산 구조가 변경되는 흐름이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더 많이 관측된다. 불과 몇 년 만에 창업자 및 핵심인재의 정의, R&R 및 자원 배치 원리를 비롯한 기업 구조, 기업이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방식, 자본이 기업에게 접근하는 원리와 구조가 모두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풀어가보자)

만약 AI가 새로운 생산수단이고, 이미 사회에서 생산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4세대 브루주아지와 4세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기점에 놓여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산업혁명을 주도할지, 올라탈지, 혹은 착취당하거나 사라질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론을 넘겨짚고 싶지는 않지만, 흐름을 보고 있지 않은게 더 위험하겠다는 직감은 든다.

Lead, Ride, or Fade out

만약 지금이 산업혁명 시기가 맞다면, 새로운 부르주아지의 길이 열릴 것이니 인생에 한 번쯤 마주할만한 계급 전환 포털을 제대로 붙잡고 싶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을 마주친 사람들은 항상 세 갈래로 나뉘었다.

Lead : 어떤 이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혁명을 이끌었다. 증기기관을 가진 공장주, 전력망을 장악한 재벌, 플랫폼을 만든 빅테크. 이들은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고, 그들 스스로 잉여이득의 선봉에 섰다.

Ride : 어떤 이들은 혁명을 올라탔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 화이트칼라 사무직과 전문 경영인, 코드를 쓰는 프로그래머. VC는 새로운 자본가 계층으로 등장했다.

Fade out : 그리고 많은 이들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착취 당하거나, 퇴화되거나, 아예 보이지 않게되었다.

만약 미국에서 1940년쯤 태어났으면 평생 산업혁명이랑은 관계없이 살다 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 시대에 어쩌다보니 산업혁명을 마주한 이들은, 어쩔 수 없게도 새 질서를 이끌거나, 올라타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셋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한다. 이왕이면 앞서는게 낫지 않을까.

두 가지 질문

앞으로 1년 동안 이 블로그에서 딱 두 가지 질문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다.

첫 번째, AI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위한 기업은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만약 산업혁명이 맞다면, AI 시대의 생산수단을 어떻게 소유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AI 시대의 기업가는 어떤 사람이고, 핵심인재는 누구이며, 기업 구조는 어떻게 생겨야 하고,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는가? 현장과 책을 오가며 정리해보고, 실제 사업으로 옮기는 이야기도 종종 전하려 한다.

두 번째, AI 시대의 자본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야 하는가? 2차 산업혁명기 투자은행이 자본을 장악했듯이, 3차에 VC가 높은 멀티플을 냈듯이, 기술 변화는 자본의 흐름도 바꾼다. AI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획득하려는 자들은 어디로 어떻게 자본을 흘려야 하는가? 이 이야기는 낭만투자파트너스에서도 같이 전할 것이다.

물론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지금이 정말 산업혁명인가?"다. 냉정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만약 아니라면, 낭패다. 그때 다시 생각해보겠다.

어떤 날은 록펠러의 Standard Oil 독점과정을, 어떤 날은 2024년 Open AI의 영리법인화가 시사하는 바를, 어떤 날은 2005년 Y Combinator의 등장 배경을, 어떤 날은 실리콘밸리가 왜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지 않는지를 적어보려 한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대로 눈을 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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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길을 걷다가, 우연한 접점에서 저를 마주친 분들과 언제든 대화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